물푸레나무가 있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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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중학교 2, 3학년 국어

3211독서에 관한 사유_김봉순

LAZY_FARMER 2018.08.06 18:26 조회 수 : 5

 동해의 영랑호, 그 아름다운 호수길을 따라 산책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소나무 숲에 내리는, 그 탐스러운 함박눈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그 따사로운 햇볕을 쪼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인데. 뭔가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데, 호수로 하여 함박눈으로 하여 햇볕으로 하여, 그저 행복하지 않은가?


  독서가 이런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밥이 되지 않아도, 성적에 넣지 않아도, 지식의 활용이 되지 않아도, 그냥 읽음으로 하여 앎으로 하여, 그저 행복할 수 있을까? 호수를 보듯 책 속의 풍경을 구경하고, 영화를 보듯 이야기 나라를 들러보고, 모험을 하듯 의미의 동굴을 탐험하면서,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책을 앞에 두고, 책으로 하여 나의 존재함이 행복하고 감사해질 수 있을까?



  독서의 즐거움을 예찬하는 동서고금의 명언들을 아무리 들려주어도, 책을 읽는 즐거움은 아는 자에겐 아는 것이고 모르는 자에겐 모르는 것이다. 그 간극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심히 깊다. 느끼는 자에겐 지고의 선이고 나눠주고픈 미덕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겐 무의미이고, 강제이고, 인내이고, 귀찮은 전도 같다. 누가 대신 업어다 건너 줄 수 없는, 오로지 제 발로 걸어가만 알 수 있는 그 맛을 느끼기까지, 마치 무신론자에게 신앙심을 불어넣는 듯한 신념과 관심이 필요하다.  


  독서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독서 교육이 현실적 목적일 터이다. 한데, 이 목표로 가는 길엔, 무신론자 같은 독자도 독자이지만, 그나마 돋으려는 싹을 밟아 이기는 악마가 있다. 악마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걸 ‘몽땅 알라’고. 이걸 ‘몽땅 믿고 존경하라’고. 그렇게 못하면 ‘네가 못나서 그런 거라’고. 다이제스트판인 주제에 엄청난 권위로 무장하고 있는 우리의 애독서와, 인생의 도를 통했을 때에나 겨우 이해할까말까 한 우리의 필독서가 엄청난 압력으로 머리와 가슴을 짓누른다. 이 압력을 잊기 위해서라도 텔레비전을 봐야 할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하자. 그보다 읽고 싶은 책이 있게 하자. 필요는 욕구를 낳는다. 필요를 찾아보자. 알고 싶거나, 쓸 데가 있거나, 성취감이 있거나, 무료함이라도 달래야 하는 당면과제가 책을 생각나게 한다. 필요를 발견하는 데는 관심사를 아는 게 핵심이다. 관심은 필요를 압력으로 만들지 않고 재미로 만든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축구선수의 자서전과 이어보자. 유식함을 뽐낼 기회도 마련해 주고, 칭찬도 한껏 해주고, 가끔 맛있는 것도 주자. 깔끔한 환경보단 발길마다 책이 걸리는 구질구질한 배치가 심심할 때 책을 친구하기엔 더 좋다. 조금 더 줄 수 있다면, 읽는 요령도 알려주면 좋겠다. 지루한 속도에 지치지 않도록, 오리무중 속에 헤매지 않도록, 빨리 읽기도 미리보기도 가르치자.


  성공한 교육은 습관을 낳는다. 한 번 두 번의 행동이 모방과 반복을 낳고 습관이 된다. 조깅을 시작하려 할 때 운동장에 가기 전에 서점부터 먼저 들러보자. 달리기 자세와 시간, 횟수, 운동 효과, 성공 사례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시행착오와 실패율을 줄여줄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학습 주제 관련 책을 골라 읽혀보자. 한 줄짜리 설명이던 것이, 뒷이야기와 사례를 더해서 또는 재미난 이야기로 채색되어, 저절로 아는 재미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자투리 시간엔 책을 주워들게 되고, 재미를 붙이면 없던 시간도 만들게 되고, 급기야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필요 없는 독서도 없겠지만, 효용 없는 독서는 정말 없다. 당장은 소용에 닿지 않더라도, 어느 틈엔가 영양소가 되어 피와 살이 되고, 힘이 된다. 처음엔 먼지 켜처럼, 다음엔 싸락눈처럼, 다음엔 함박눈처럼, 읽을수록 가속도를 내며 쌓여서 두터운 빙하가 되고 단단한 지반이 되어 나의 중심을 형성한다. 세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눈은 더 먼 곳을 보고, 마음은 투명하여 세상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다. 옛 성현들이 말씀하셨듯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은 두려워하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고, 그래서 복종하지 않는다. 부탄가스 폭발 뉴스는 삼겹살 집을 기피하게 만들지만, 폭발의 조건을 알고 있는 자유로운 정신은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뿐만이랴. 배반의 상처가 깊었던 아라비아의 왕은 천일 동안의 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처를 씻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알게 모르게 앎과 삶이 사람을 깊게 만들고 강하게 만든다.    



  좋은 책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자기와 결이 맞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토지’가 감동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미굴 같이 섬세한 칸트의 사유가 전율이 일도록 감동적인 사람이 있다. ‘해리포터’와 같은 상상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기도 하는가 하면, 헤비거스트의 낡은 인류학 보고서에서 평생 새 것을 배우며 살아야 하는, 한시도 익숙한 것에 머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읽고 마음 저려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모름지기 마음이 닿는 책을 만나는 것이 독서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지름길이다.


  독서의 감동을 충분히 경험했다면, 이젠 더 수준 높은 읽기를 감행해보라. 그것은 책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며, 저자의 지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것이고, 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때로 저자를 분해하고, 때로 저자에게 항의하고, 때로 저자와 대화하면서 저자와 나란히, 또는 저자의 우위에 서보라. 지원군이 필요하면 다른 저자나 다른 독자의 힘을 빌리라. 어떻든 책을 내려다보라. 그러나 무시하지 말고 존경하라. 책을 써내려간 호흡을 느끼고, 책에서 풍기는 저자의 사람냄새를 사랑하라. 괜찮은 것은 괜찮은 대로, 얄미운 것은 얄미운 대로, 감정을 싣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하라.



  그러나 세상에 할 만한 것이 독서만 있을까? 고무줄놀이도, 여행도, 과자를 씹는 것도 다 재미있지 않은가. 더구나 텔레비전과 영화, 인터넷오락이 있는 세상에서 이들을 금기시하는 것은 고문이요 형벌이며, 그 달콤한 섭리인 자유연애를 금지하던 때와 같은 닫힌 사회를 선언하는 것 아니겠는가. 심원한 즐거움이라는 것도 역시 독서만의 특권이겠는가. 밥도 안 나오는 예술에 빠진 사람들, 죽음이 있을지도 모를 히말라야를 오르고 또 오르는 사람들, 미친 듯이 종교에 매진하는 사람들. 모두, 독서에서 꼭 좀 느껴보라고 하는, 그 자유의 맛을 아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게다가 독서라는 현상이 인간을 소외시키기까지 한다면, 독서가 그다지 고귀한 것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독서에서 자아실현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감옥에 갇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면, 책의 권위 아래 자아가 왜소해져 간다면, 오히려 독서는 소꿉놀이만도 못한 인류의 악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불안하리만치 예리한 지성 스피노자는 충고했다. ‘책보다는 생활이 중요하다’. 행복엔 정해진 답이 없다. 무엇이든 누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서의 의미를 결코 놓을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성에 의한 인류의 발전을 믿는다면, 읽기가 인류를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힘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자가 목소리를 저장하고 책이 지혜를 저장하면서, 그때부터 우리는 오래 기억할 수 있었고, 멀리 대화할 수 있었고,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그래서 크게 변화할 수 있었다. 어쩌면 미래에 스크린이나 텔레파시가 책을 대신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독(讀)/읽기’이라는 행위를 할 것 같다. 지금의 상상력으로는.


    소박하게 생각하더라도 역시나 독서는 할 만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으로 독서만한 것이 있는가? 시간만 있다면 -특별한 경치가 없어도, 커다란 방이 없어도, 값비싼 기계가 없어도, 함께 할 친구가 없어도 - 웅그리고 누울만한 한 평의 공간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바로 독서이다. 도서관 옆에 살게 되는 행운이라도 따른다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외로울 땐 마음 닿는 책을 들어보길 바란다. 호사스런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건 외로움이 아닌가. 즐길 거리가 없고, 만날 사람이 없고, 매달릴 목표가 없고, 나아지고 싶은 욕구가 없을 때, 그 때 서가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뽑아보라. 마른 솜에 물이 배이듯, 고요한 내 영혼에 스며드는 숨결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영혼이 호흡하는 것이 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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